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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10 알 수 없는 허기 (1)
독서삼독이란 말을 실감한 수필을 소개 해볼까한다.
어느 주간지에 '글을 사랑하는 가슴에게'라는 코너의 '김진규'라는 소설가의 "밑천"이다.
감나무를 심었다. 열매가 많은 것은 알이 작았고, 열매가 드문 것은 알이 굵었다. 나중에는 같이 잘 자라 그늘이 지기에 하나를 베어버리려 하니, 알이 작은 것은 싫지만 많은 것이 아깝고, 열매가 드문 것은 미워도 그 알이 굵은 것이 아까웠다.-관물편 / 이익나는 충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때때로 내 경험을 꺼 내놓는 일마저 충고로 들릴까봐 겁을 내기도 한다. '영향'이라는 것은 찬찬히 스며들게 하는 것이지 단박에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내글에서 훈계의 냄새를 맡을때가 있다. 그럴 적마다 나는 되도 않는 나의 오만이 역겹고, 그래서 슬프다.글이 들어갈 자리의 이름이 '글을 사랑하는 가슴에게' 라는 것을 알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글을 판단하는 머리'나 글을 만드는 손'이 아니라 '글을 사랑하는 가슴'이었다. 가슴에 든 것이라면, 그것도 무언가를 사랑하는 가슴에 든 것이라면 분면 다정하고 너그러운 것일 테고, 하면 나도 더불어 편안하게 내 가슴을 열어 보여주면 되니까 말이다.부끄러운 것이 많았다. 가난이 그랬고, 늙고 병든 아버지가 그랬고, 영리하지 못한 나 자신이 그랬다. 그리고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죄다 그것들의 탓으로 돌렸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고단해졌다. 어떻게든 죄의식을 감춰야 했으니까.나는 말도 많았다 걸러지지 않은 무수한 단어들이 내 주변을 우왕좌왕 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억지로 떠드는 일이 불편했고 야금야금 축나는 시간이 아까웠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의미없는 이야기들에 휘둘리고 떠밀릴 뿐이였다. 그럴수록 나는 가벼워졌다.하여 나는 감히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감추고 싶은 것이 많으니 언제나 숨어야 했고, 그러면서도 입을 가만두지 못하니 내 속에 남아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글쟁이가 되기 위해 그 어떤 의도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고, 때문에 정보에 무지했으며, 기술적으로 훈련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그럼에도 글쟁이는 언제나 내게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고 이상이었다.그래서였겠지만, 나는 늘 갈급했다. 세상의 그 어떤 일도 마음을 제대로 묶어주지 못했다. 하여 나는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그 허기를 타인의 글자들로 채워나갔다. 그렇게, 수많은 책들이 매 끼니마다 밥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활자를 향한 그 오랜 집착이 결국 내입을 다물게 했다. 질서정연한 문장들과 반듯한 단어들, 그리고 빈틈없는 사고들, 그 앞에서 나는 기가 죽었고 점점 잦아들었다.내 안에 말들을 가두기 시작하면서 나는 무거워지고 더불어 풍성해졌다. 내가 가진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는 두꺼워지고 단단해졌다.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처음으로, 갑자기 '소설'이라는 것을 쓰면서 체질로 승화된 무수한 문자들의 정체를 의식하게 된 것이다. 고무장갑을 낀 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에 치어 때때로 절망하던 그 순간에도 내 무의식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육화된 말들이 내 속에서 들끓다가 저절로 비어져 나오기 시작할 때까지도 그것들이 그렇게 요란한 줄 몰랐다. 마흔 바로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곰삭은 내 말들의 실체를 보았다.그러고 나니 이번에, 그게 무어든 버리지도, 잊지도 않은 내가 새삼 대견스러워졌다. 수치심과 열등감, 자학으로 어영부영했던 시간조차도 참아 내온 나의 의지가 신통해졌다. 그리고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밑천이 되었다.우물을 치고 나면 텅 비어졌던 돌담 안에 어느새 물이 차오른 걸 보게 된다. 물의 정직한 순환 속에서 우물은 우물대로 물을 가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글을 사랑한다면 그 가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 품을 뿐이다. 하물며 그게 독이라고 해도, 공들여 쟁여둘 일이다.
그의 글에서 '작은 희망'을 본 건 나뿐일까..
누구말대로 '위대한 작가'보다 '작은 글쟁이'라도 되고 싶은 나다.
오늘도 타인의 글자들로 알 수 없는 '허기'를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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